희천의 건치연혁
온양(溫陽) :탕정(湯井)→온수(溫水)→온창(溫昌)→온천(溫泉)→온양
희천(熙川) :위성(威城)→청새(淸塞)→위주(威州)→희주(熙州)→희천
희천은 평안북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는 고구려의 영토였고, 발해때는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하였다. 한때는 여진족(女眞族)의 근거지가 되었으나 고려 초에 수복되어 청새진(淸塞鎭)이라 하였다.
1217년(고종4) 서희(徐熙)가 거란의 침공을 막아 위주방어사(威州防御使)로 승격되었다. 후에 서희의 이름을 따서 희주(熙州)로 고쳐 개주(价州:价川)에서 현감을 겸하게 하였다. 396년(태조5)에 희주군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13) 희천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부군제(府郡制) 실시에 따라 희천군으로서 강계부(江界府)에 속하였다.
1896년 지방관제 개혁으로 다시 평안북도 희천군으로 개편되었다. 1941년 희천읍으로 승격하였고, 1949년 자강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1967년 희천읍을 비롯한 희천군 일원이 희천시로 승격되었다.
또한 1981년 명문리(明門里)ㆍ양지리(陽地里)가 송원군(松原郡)에 편입되었다.
동방 5현(賢)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 선생이 무오사화(1498, 연산군4년)로 이곳에 유배되면서 지역관리의 자제였던 17살의 어린 조광조(趙光祖)를 가르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관내로 청천강(옛이름 :살수, 薩水)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