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선조-Ⅴ
자헌대부 남도병마절도사 겸 북청도호부사 훈련대장 병사공
資憲大夫 南道兵馬節度使 兼 北淸都護府使 訓鍊大將 兵使公
병사공(1554∼1623년)께서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언승(彦昇) 호는 매곡(梅谷)이고 휘(諱)는 준계(遵階이시다.
1554년(명종9, 甲寅) 12월 25일 중조 양정공 휘 우(宇)의 7世孫으로 태어나셨으며 할아버지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贈通政大夫戶曹參議) 휘 중순(仲醇)이시고 아버지는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지의금부사(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 成兼知義禁府事) 휘 전(戩)이시며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광산김씨(贈貞敬夫人光山金氏)로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주정(周鼎)의 따님이시다.
공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출중하고 대장부(大丈夫)의 뜻이 있으셨다.
1583년(선조16, 癸未) 9월 별시 무과(別試武科:虎榜)에 급제하시어 오랫동안 내삼청(內三廳)에 제수되셨고 1594년(선조27, 甲午) 5월 영암(靈巖)ㆍ밀양(密陽)ㆍ대구(大邱)에 제수되셨으며 훈련원정(訓練院正)을 거쳐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지내시고 1599년(선조32, 己亥) 9월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셨다.
1603년(선조36, 癸卯) 경기수사(京畿水使)를, 1605년(선조 38, 乙巳) 2월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내시다 간성군수(杆城郡守)로 나아가셨다가 1608년(선조 41, 戊申) 철원부사(鐵原府使)로 이배(移拜)되셨다. 뒤이어 황해병사(黃海兵使)ㆍ호서절도사(湖西節度使)를 지내시고, 1611년(광해군3, 辛亥) 온성(溫城)에 제수되셨다가 회령부사(會寧府使)로 이배되셨으며 임금을 호위(扈衛)한 공(功)으로 자헌(資憲, 정2품)에 이르셨다. 1618년(광해군10, 戊午)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훈련대장(訓鍊大將)에 제수되셨고 이듬해 남도병마절도사(南道兵馬節都使)가 오르셨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으면서 1604년(선조 37, 甲辰) 4월 경기수사로 계실 때 원종(原從)한 공(功)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일등(一等)에 책록되셨고 1613년(광해군5, 癸丑) 8월 회령부사(會寧府使)로 계실 때 어가(御駕)를 호위(扈衛)한 공으로 위성원종공신(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셨다. 공은 1623년(인조 원년, 癸亥) 5월 8일 노환(老患)으로 향수 70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정배(正配)는 정부인 전주이씨(貞夫人全州李氏)로 중종(中宗)의 왕자 해안군(海安君) 이희(李㟓)의 따님이시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셨는데, 장남 휘 낙(洛)은 회령부사(會寧府使) 차남 휘 형(浻)은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내셨고 따님은 수사(水使) 이담(李憺)의 아내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