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의 할아버지는 정순대부 방예빈시사 추밀원지사(正順大夫邦禮賓寺事樞蜜院知事) 휘 진(振)이시고 아버지는 봉익대부 판전객시사(奉翊大夫判典客寺事) 휘 양익(良益)이시며 어머니는 아쉽게도 전래하는 기록이 없다.
희천(熙川)의 토호(土豪)로서 가정대부 호조전서(嘉靖大夫戶曹典書) 강계진관 방어유수(江界鎭管防禦留守)를 지내고 대광봉익대부 문하시중(大匡奉翊大夫門下侍中) 진현전 대제학(進賢殿大提학)에 이르셨다. 《전고대방(典故大方)》에 따르면 문장(文章)이 일세를 진동했으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기울어져 가는 고려 왕조를 부흥시켜 보려고 충절(忠節)을 다하다가 고려의 운이 다하자 경덕궁(敬德宮) 앞 고개(부조현, 不朝峴) 북쪽에 관(冠)을 걸어놓고 고석산(古石山)에 들어가 벼슬하지 않으셨으며 두문동 72학자 사건(杜門洞七十二學者事件)의 일원(一員)이시다.
한시(漢詩) 해안가(海雁歌: 기러기 노래)를 지으셨다.
정배(正配)는 정부인 단양우씨(貞夫人丹陽禹氏)이시며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나신 분이 바로 중조(中祖)이신 좌명공신(佐命功臣) 희천군(熙川君)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兵曹判書) 양정공 (襄靖公) 휘 우(宇)이시다.
묘(墓)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177-5(구, 산45-5) 홍복산(弘福山) 서변(西邊)에 있는 서산(西山) 유좌지원(酉坐之原)에 모셨다. 그러나 배위(配位)의 묘소는 실전(失傳)되었다.
【註】1. 2022년 8월 20일 인터넷족보 편찬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의 관직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備考) 》 권47 기록에 따라 예조전서를 호조전서로 변경(교정)하였다.
2.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光德山)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으로 72현이 모두 이곳에 들어와 마을의 동‧서쪽에 두문(杜門)을 세우고는 빗장을 걸어 놓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후세에 절의의 표상으로 숭앙되었고, 두문동 태학생(太學生) 72인이라고도 불렀다.
※ 부곡리 177-5(구, 산45-5) 임야 6488㎡(1963평)는 1984년 인근 군부대에 매각되어 국방부 소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