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례[祭禮]
고려 공양왕 2年(1390, 庚午 2月)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발의(發議)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례규정(祭禮規定)에서 비롯되거니와 그에 의하면 대부(大夫) 이상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3대, 6품 이상은 2대, 7품 이하 일반 서인(庶人)은 1대[부모] 제사만 지내라고 하였다.
그 후 이조(李朝)《경국대전(經國大典)》의 예전편(禮典篇)에 규정한 것을 보면 사대부(士大夫)이상이 4대, 6품 이상이 3대, 7품 이하는 2대, 일반 서인은 1대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 그 당시는 전제군주제도(專制君主制度)로써 계급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제사의 봉사(奉祀) 대상까지도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그러다가 한말(韓末)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여파로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너도나도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게 된 것이다.
▣기제사[忌祭祀]
요즈음에는 비록 친족일지라도 부모 제사 이외에는 정확하게 제삿날을 기억하기 어렵다. 더욱이 제삿날은 주로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하는 집안이 많아 더욱 그렇다. 기제의 봉사(奉祀) 대상은 과거에는《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4대조(高祖)까지였으나 1969년 3월에 제정된 가정의례준칙 제39조에는「기제의 대상을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한다. 다만 무후(無後)한 3촌 이내의 존속 동 항렬(同行列) 또는 비속의 친족에 대하여는 기제를 지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기제의 일시는 망종(亡終)한 날 즉 망종일의 새벽(작고일의 자정)에 지내는 것으로 예서(禮書)에 쓰여 있으나 그날로 접어드는 밤중(0시를 지나1시까지)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가정의례준칙 제40조에는「기제는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낸다」로 하였다. 그렇지만 오늘날과 같이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는 대부분 퇴근 후 지내게 되므로 오후 9~10시 정도에 지내는 집들이 많다. 또한 제41조에는「기제는 제주(祭主)의 집에서 지낸다」고 하였고 제42조에는「고인의 장자 또는 장손이 제주가 되며 장자 또는 장손이 없는 경우에는 차자 또는 차손이 제사를 주재한다」고 하였다.
상처(喪妻)한 경우에는 남편이 제주가 되며 그 자손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에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고 명시하고 제43조에 제사의 참례인(參禮人)는 고인의 직계 자손과 근친자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부득이 참사할 수 없는 직계 자손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묵념으로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였다. 한편 제44조의「행사 방법은 양위(兩位)가 모두 별세하였을 경우 합설(合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였다.
▣기제사 지내는 순서
◈영신(迎神)※조상님 모실 준비하기
1)대문(현관문)을 열어 놓는다.
2)제상(祭床)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수(祭需)를 진설한다.
3)지방(紙榜)을 써 붙이거나 또는 사진을 모시고 제사 준비를 마친다.
※출주(出主)라 하여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셔 내오는 의식도 있다.
◈강신(降神)※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의식이다.
1)제주(祭主)가 신위(神位)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2)향로에 향(삼상향, 三上香)을 피운다.
3)집사(執事)가 제상의 빈 잔을 들어 제주에게 드리고 잔에 술을 조금따른다.
4)제주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茅 沙)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나누어 붓는다.
5)빈 잔을 집사에게 다시 건네주고 집사는 제자리에 놓는다.
6)제주는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神)에게 알리는 의식으로 분향(焚香)이라 하며 모사 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계신 신에게 알리는 의식으로 뇌주(酹酒)라고 한다.
◈참신(參神)
참례인(參禮人)모두 두 번 절한다.
※신주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하고, 지방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한다.
◈초헌(初獻)※제주가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1)제주는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분향한다.
2)집사가 제상의 빈 잔을 제주에게 드리고 잔에 술을 가득 붓는다.
3)제주는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향불 위에 세 번 돌리고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부은 다음 두 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4)집사는 잔을 받아서 메(밥)와 갱(羹‧탕국)그릇 사이의 앞쪽에 놓고제물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5)제주는 두 번 절한다.
※잔은 합설(合設)인 경우 고위(考位) 앞에 먼저 올리고 다음에 비위(妣位) 앞에 올린다. 집안에 따라서는 술을 올린 뒤 메(밥)그릇 뚜껑을 열어 놓기도 한다.
◈독축(讀祝)
1)초헌이 끝나면 참례인 모두 꿇어 엎드린다.
2)축관이 제주의 좌측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꿇어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 두 번 절한다.
※예전에는 독축 뒤에 직계 자손들은 곡(哭)을 했는데, 부모의 기제사는 반드시 곡을 해야 했고 조부(祖父) 이상의 조상 제사에는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헌(亞獻)※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원래는 주부가 올린다. 주부가 올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주의 다음가는 근친인이 올리고 두 번 절한다. 절차는 초헌 때와 같으나 모사에 술을 따 르지 않는다.
※주부가 잔을 올리고 절할 때는 4배를 한다. 아헌은「가례」의 예서(禮書)에서 모두 주부가 행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한다.(부부공제,夫 婦共祭)’는 정신에서 나온 예법이지만 전통적으로 여자가 헌작(獻酌)하는 풍습이 드 물었으므로 주로 제주 이외의 친족 형제들이 행하였다. 이때 잔을 올리고 싶은 참례 인은 올려도 되며 잔을 올린 사람은 두 번 절한다.
◈종헌(終獻)※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아헌인의 다음가는 근친인이 아헌 때와 같이 한다. 잔은 채우지 않고 칠 흡(70%)쯤 부어서 올린 다음 두 번 절한다.
◈첨작(添酌)※유식(侑食)이라고도 한다.
1)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다시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는다.
2)집사는 술 주전자를 들어 종헌 때70%쯤 따라 올렸던 술잔에 세 번첨작하여 잔을 가득 채운다.
※또한 다른 잔에 술을 부어 집사에게 주면 집사는 세 번 나누어 잔에 가득히 채우기도 한다.
◈계반삽시(啓飯揷匙)※삽시정저(揷匙正筯)라고도 한다.
1)메(밥)그릇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밥그릇의 중앙에 꽂는다.
젓가락을고른 뒤 어적이나 육적 위에 가지런히 옮겨 놓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계반을 초헌 때 하기도 한다.
2)숟가락 바닥(안쪽)이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3)삽시정저가 끝나면 제주는 두 번, 주부는 네 번 절한다.
◈합문(闔門)※조상님이 편안하게 흠향(歆饗)하실 수 있는 시간이다.
참례인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린다. 대청마루에 제사상을 차렸으면 뜰 아래로 내려가 읍(揖)한 자세로 잠시 기다린다.
단칸방의 경우에는 제자리에 엎드려 몇분 정도 있다가 일어선다.
◈계문(啓門)※닫았던 문을 여는 절차이다.
축관이 헛기침을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례인이 모두 뒤따라들어간다.
◈헌다(獻茶)
1)갱(羹‧탕국)을 내리고 숭늉(숙수‧熟水, 갱물)을 올린다.
2)메(밥)를 조금씩 세 술을 떠서 갱물에 말아 놓고 숟가락은 손잡이가 서쪽으로 가게 걸쳐 놓는다.
3)이때 참례인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잠시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든다.
◈철시복반[撤匙覆飯]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둔 다음 밥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사신[辭神]※조상님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이다.
1)참례인 모두 두 번 절한다.
2)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이로써 제사를 올리는 의식 절차는 모두 끝난다.
※신주(神主)일 때에는 사당으로 사진일 때는 제자리로 모신다.
◈철상(撤床)
향불과 촛불을 끄고 제상 위의 모든 제수를 뒤쪽(안쪽)에서부터 차례로물린다.
※제사에 사용한 잔, 주전자, 퇴주그릇에 있는 술은 모두 병에다 부어 보관하는데, 이것 을 복주(福酒)라고 한다.
과일, 고기 등 음식들을 모두 일반 그릇에 옮겨 담고 제기 는 잘 닦아서 보관한다.
◈음복(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란 의미로 참례인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다.
※고례(古禮)에는 ‘준’이라 하여 다음날 아침에 가까운 이웃들에게 제사 음식을 나누어주고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했다.
▣불천위제[不遷位祭]
불천위란 덕망이 높고 나라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영원히 사당(祠堂)에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가한 신위(神位)로서 나라에서 하사(下賜)한 불천위 제사는 옛날엔 정월 원단(正月元旦)‧추석(秋夕)‧한식(寒食)‧동지(冬至)날 등 사시제(四時祭)를 봉사(奉祀)했는데, 요즘에는 차례(茶禮)와 기제(忌祭) 그리고 세일사(歲一祀)만 봉사(奉祀)한다.
불천위는 위패(位牌)를 옮기지 말라는 뜻이다. 반면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시향(時享: 시제, 時祭)이야말로 가장 큰 제사(大祭)라 하였다.

▲양정사(襄靖祠)불천위제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
조선시대 양반 문화(兩班文化)의 중심은 봉제사 접빈객이다. 봉제사는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하고, 접빈객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종가(宗家)의 덕목이다. 봉제사의 핵심은 훌륭한 조상의 삶을 돌아보는데 있다. 조상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이켜보고 훌륭한 삶을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접빈객은 손님에게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이는 자기혼자만 잘 사는 삶을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共同體意識)을 형성시킨다.
여기서 제사에 관한 일화(逸話)를 하나 소개해 보기로 한다.
조선 전기 문신으로 청백리(淸白吏)이자 명재상(名宰相)으로 널리 알려진조선조 최장수(最長壽) 재상 황희(黃喜, 1363~1452) 정승(政丞)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제 아내가 해산(解産)을 했는데, 오늘 제사를 지내도 되는 지요?” 하자 “그렇게 하게”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오늘 돼지가 죽었는데, 제사를 지내면 안되겠지요?”하고 묻자 “지내지 말게” 하였다.
그러자 부인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냐”고 물었더니, 황희 정승은 지내도 되는지요? 하는 사람은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것이고, 안되지요? 하는 사람은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지내지 말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