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 증서(贈書)
율곡선생 증 김경엄(金景嚴, 휘 戣의 字) 서
- 율곡선생 전서 제2권 -
유한함을 즐기고 천석(泉石)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통하는 평소의 마음이나 매양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나니 이는 환로(宦路)가 그의 병이 된다. 벼슬아치의 길 둘이 있으니 어버이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것일 뿐인데도 또한 어버이를 위하지 못하고 백성을 위하지 못하면서 오직 인수(印綬)만을 섬기는 자는 이는 산정(山亭)과 수사(水榭)의 한가하고 빈집을 가지고 새의 집을 삼고 뱀이 칩복(蟄伏)하는 곳의 자리가 될 뿐이다.
김경엄(金景嚴)이 여러 해를 통하여 한가히 살 집의 장소를 구하였는데, 근자에 교하(交河)에 심악(深嶽)의 동봉(東峯) 아래에다 몇 칸의 집을 짓고 암천(巖泉)을 이끌어 방당(方塘)에 대고 정우(淨友)를 사귀면서 송(松)ㆍ국(菊)ㆍ매(梅)ㆍ죽(竹)을 심었다. 작은 길을 끼고 돌아가면 이미 그윽한 아취(雅趣)를 안고 있고 그리고 창을 의지하여 눈을 들면 대야(大野)가 멀리 보이고, 벼논에는 구름을 연하였으며 안개는 산을 둘렀는데, 한가히 장강(長江)에 떠있는 돛단배 은은히 비추고 도서(島嶼)는 아득하여 넓은 듯 깊은 듯하여 둘 다 아름다움을 얻었으니 그의 통쾌한 본심을 알겠고 그리고 경엄이 이곳에서 조석으로 살지 못하였으니 어쩜 동인(銅印)을 허리에 찬 빌미가 아니겠는가! 경엄의 성선(聖善)께서는 연세 높으신데, 그 읍(邑)을 위하여 청렴하고 부지런히 정성을 다하므로 백성들은 할 바를 얻으니 벼슬아치의 어버이를 위하고 백성을 위함이 분명하도다.
이것이 어찌 인수(印綬)에서 마치는 것인가? 타일(他日)에 돌아오면 이(珥)가 사는 곳으로 더불어 가까우니 서로 상종(相從)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시(賦詩) 한 수로 믿음을 삼고자하면서 먼저 서문(序文)을 쓴다.
고인복신거(故人卜新居) 고인(친구)이 새로 살 곳을 정하니
소쇄적야성(瀟灑適野性) 소쇄하여 야성에 알맞네.
한암세천명(寒巖細泉鳴) 찬 바위에는 세천이 울고
방소하화정(方沼荷花淨) 모난 연못에는 연꽃이 깨끗하네.
황운원교평(黃雲遠郊平) 누런 구름은 교외의 평야에서 멀고
벽애요잠명(碧靄謠岑暝) 푸른 아지랑이 멀어 메는 어둡네.
강호호만안(江湖浩滿眼) 강호는 넓어 눈에 가득한데
관내와가청(款乃臥可聽) 찬탄하는 소리 누워서도 들린다네.
호위미귀래(胡爲未歸來)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는 가!
좌우우실병(坐憂于室病) 앉아서 아내의 병을 걱정하네.
봉전구감지(俸錢具甘旨) 녹봉으로 감지를 갖추고
완수좌위명(婉受慈闈命) 은근히 어머니의 명령을 받네.
당허이선양(儻許以善養) 혹 호연지기를 잘 길러 나간다면
산하유수경(山河有誰競) 산하에 누구와 경쟁 할꼬.
아가침임진(我家枕臨津) 우리 집은 임진강을 베었으니
가욕역가영(可浴亦可泳)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려 하네.
양지불숙용(兩地不宿舂) 두 곳이 양식(糧食) 적지 않으니
근수기대청(近隨豈待請) 가까움을 따르지 어찌 청함 기다리랴.
저군사오마(佇君辭五馬) 그대 기다리느라 오마를 사양했으니
동유송국경(同遊松菊逕) 소나무 국화 길을 함께 놀아보세.
註) 동인(銅印):지방 관원이 차는 동호부(銅虎符)를 말함
성선(聖善):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오마(五馬):태수(太守) 즉 지방 수령을 뜻한다.
본래 태수의 수레에는 네 필의 사마(駟馬) 외에 한필의 말을 더 붙여주었다고 한다.《청야록, 淸夜錄》